Book review

#20 < 에이트:씽크 >

yoons.Dev 2022. 2. 13. 20:07

저자 : 이지성

 

출판 : 차이정원

 

발매 : 2020.09.15.

 

인공지능 앞에서 바둑은 흑과 백이 만드는 예술작품이 아니었다. 그저 확률 싸움에 불과했다.

 

위의 말은 우리나라 바둑의 정점의 위치에 있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설명하며 말한 말이다.

 

<에이트:씽크>는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 를 만드는 여덟가지 방법을 다룬 <에이트>의 저자 이지성 작가가 쓴 책이다

 

그동안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이 생긴 이후 인공지능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적힌 책과 인공지능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있는 양단의 책을 찾고 있었고 그러던 중 ‘인공지능의 딥러닝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Think’ 라고 말하고 있는 이 책에 문구에 의문을 느끼게 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에이트>에선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의 핵심은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Think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처음 이 Think라는 단어를 보고는 그냥 막연하게 ‘생각’ 을 하라는 소리인가? 라는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책을 완독하고 나선 Think의 의미가 그렇게 단순한 하나의 의미로 치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는
인공지능에게는 학습하는 능력만 있을 뿐 생각하는 능력은 없다고 말하면서 진짜 공감, 진짜 창조에 대해 말해준다. Think를 통해 공감과 창조를 할 수 있는 건 인간이 유일하고 인공지능이 하는 창조는 인간의 Think 위에 존재하는 모방, 변형, 융합이라고 말하는 저자에 있어 공감을 하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선 이 책은 인공지능을 비판하기보단
너무나도 빠르게 다가오는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Think의 기원과 인공지능의 관계 속에 인문학과 철학을 이용해 설명하는데 그 내용들을 읽다 보면 저자의 시야와 견해가 존경스러워진다.


인문학과 철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도 해준다. 그래서 내용이 약간 난해해도 계속 읽을 수 있었다. 완독 한 후 내 인문학 관점에 있어 큰 변화를 준 것 같다.

 

이제부터 쓸 내용은 이 책의 방대한 내용 중 아주 작은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Think의 힘, 진정한 창조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면서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문학적 기반 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꽃피운 세종대왕 시대의 지혜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때 일본과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서당에서 철저한 인문학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지금 사회에서 서당
, 훈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조선의 개화를 늦춘’,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이라는 부정적 생각이 나올 법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훈장은 지금의 학교 교사와는 달랐다. 훈장은 지역사회의 ‘법’이자양심’이었고, 지역 최고의 인문학자였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성품을 가진 선비였다. 쉽게 말해 훈장은 유대 민족의 랍비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일제의 악랄한 탄압 정책으로 인해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저자는 이게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

유대민족은 2000년 가까이 나라를 잃고 유랑했지만, 랍비로 대표되는 구약성경 교육과 인문학 교육 전통을 목숨 걸고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민족이 됐다. 만일 우리가 서당의 인문교육 전통을 유대민족 이상으로 지켜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조선시대 인문학의 정점을 이룬 대표적인 사람을 뽑으라면 조선 전기 세종대왕과 조선후기 정조대왕 뽑을 수 있다. 수학은 물론 과학, 천문, 농업, 음악, 의학 등등 어느한 부분에서도 세종대왕이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다. 정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뒤주에서 죽어가는 와중에도 정조는 굳건하게 버티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결국 왕이 된다. 왕이 된 후 규장각, 장용영, 초계문신, 의학 등 수많은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하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인문학을 가까이했다는 점이다. 공자의 말을 수백번 읽고 맹자의 말을 수만번 읊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세종대왕과 정조보다 더 많은 기술과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뛰어난 폴리매스인들을 만날 수가 없다

 

저자는 인문학의 또 다른 이름은 철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철학이 계산과 증명 등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수학이고, 관찰과 실험 등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과학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수학, 과학을 못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아는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려 12년간 수학, 과학을 배우고도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철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은 스스로 ‘왜?’라는 철학적 질문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논리적인 증명 또는 실험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공식을 이끌어내 자기 것으로 만든 뒤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알았다
. 나는 그동안 많은 명언들을 만나봤다.

나는 그중에 why? 에 대해 꽤 감명 깊게 마음속에 새겨놨었다.

그런데 그 why, 라는 단어가 어째서 중요한지는 명확히 알진 못했다. 단지 그 why를 통해 내 선택의 방향과 이유 그리고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라는 단어는 철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인문학의 관계
, 그리고 Think 와의 연결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건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당신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당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책에서는 세상에는 세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모든 주장의 밑바탕에는 철학과 인문학이 존재한다. 저자는 <사기> 속 사물의 이치가 여전히 통용된다고 말한다.


2100년 전 사마천이 <사기>,<화식열전>에서 

“사람은 자기보다 재산이 열 배 많은 자를 만나면 욕을 하고, 백배 많은 자를 만나면 두려워 하고, 천 배 많은 자를 만나면 고용당하고, 만 배 많은 자를 만나면 노예가 된다. 그게 사물의 이치다.”

라고 말했다.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했을 무렵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였고 로마는 제2차 노예 전쟁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약 2100년 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고조선 시대 때부터 통용되고 있었던 사물의 이치가 현재도 크게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이유가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바꾸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변화하면 된다고 말해준다.

저자는 사회 밑바닥에서 취직시험에 연거푸 쓴 잔을 마시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술과 게임으로 나날을 보내던 사람들에게 조차 위안거리였다고 한다.

그들은 저자를 보고 뒤에서 “그래도 우리는 저 인간처럼 무지막지한 빚을 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라고 수군거리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시켰고 저자는 그 합리화의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수군거렸던 사람들이 지금 저자를 향해 하는 소리는

“ 당신이 무명이던 시절, 얼마든지 당신 곁에 있을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걸 뼈아프게 후회한다. 만일 그때 내가 당신과 함께 인문학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어쨌든 이제라도 인문학을 만나게 된걸 행운으로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수군거렸던 인물들이 저자의 세속적인 성공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

“스스로 깨달아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 읽고 듣고 배워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 누군가의 성공에 자극받아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


안타깝게도 세 번째 부류가 무척 많다
.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희망을 본다고 말한다. 이는 곧 내가 성장하고 성공하는 만큼 사람들을 변화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당신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당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는 어쩌면 우리가 모두 누군가의 성공에 자극 받아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든, 스스로 깨달아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든 간에 우리가 변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 자체, 즉 그 행동을 시작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였을까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

 

결국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원동력이 되는 힘은 격물치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저자도 격물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격물치지가 아닐까 한다.

 

격물치지란 중국의 대표적 인문학 책인 <대학>에서 나오는 말로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치지)이라는이다.

 

우리는 내가 변화하기 위해 나를 깊이 연구하고 나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것을 시작하고 그 이후 나의 꿈을 찾고 내 꿈을 위한 목표를 연구하고 지식을 넓히는 것이다.


꾸준함
, 습관, 도전, 열정, 흥미 뭐든 좋다

우리가 격물치지를 할 수 있는 어떠한 마음가짐이든 결국 하나로 통용되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나는 왜 어떤 일을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 정답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지 않았다. ‘깊게 파고들지 않아도 재미가 있다면 자연스레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정답은 없어도 정도는 있다고 했다.

무엇이 정답이 되는 방법인지는 잘 모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정도는 알았다.

격물치지 그것이 정도인 것이다.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ai에 뒤처지지 않을 창의력과 창조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철학이 왜 수학과 과학에 연관이 되는지, 그토록 많은 학문들을 통달할 수 있었던 옛 선인들의 방법을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것 같다.

 

저자의 시야가 부럽다. 그래서 더욱 인문학에 대해 연구를 해보려고 한다. 그 마음을 지니며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다.